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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교 문학박사 강릉문화원 이사

우리나라 최초 객사 임영관(臨瀛館)은 936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천 살 하고도 여든 셋을 먹은 나이다. 이어 경주, 고령, 순안, 성천 객사가 잇따라 건립됐지만 역사로 따지면 단연 으뜸인 데다 임영관 삼문은 국보 제51호로 우리나라 건축 문화재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이같이 자랑스러운 보배는 당시 명주호족 김순식 장군으로부터 비롯됐다. 918년 고려를 세운 왕건은 궁예 세력하에 있던 막강한 명주장군 김순식이 새 왕조가 바뀌었는데도 자신에게 귀의하지 않자 922년 왕건은 순식의 아버지 허월대사를 보내 회유토록 하였다. 순식은 먼저 큰아들을 보내 귀의하게 했고, 5년 뒤 둘째 아들을 보냈으며, 다음 해인 928년에야 순식은 왕건에게 완전히 귀의했다. 왕건은 기쁜 나머지 김씨 부자에게 자신의 성과 같은 왕씨 성을 하사하고 순식에게는 최고 관직인 대광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명주장군이 자신에게 귀의하자 왕건은 어떠한 형태로든 왕순식의 고향에 대한 예우를 생각했을 것이고 어쩌면 이 무렵부터 객사 건립은 싹이 트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8년 뒤 936년 왕순식은 왕건이 신검을 토벌할 때 명주에서 자신의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참전해 후삼국 통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때 왕건은 “내가 지난밤 어떤 스님이 무사 3,000명을 거느리고 온 꿈을 꾸었는데 마침 그대가 와서 도왔으니 지난밤 꿈에 나타난 것은 그대가 아닌가”라고 하자 명주장군 왕순식은 “제가 명주를 떠나 대관령에 이르자 이상하게도 승려의 사당이 있길래 예를 갖추고 기원제를 올렸습니다. 아마 지난밤 꾸신 꿈은 이것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왕순식이 병사 3,000명을 거느리고 대관령에서 예를 올린 승사가 바로 매년 단오제 때 산신제를 지내는 대관령산신당이다. 여기에 모신 산신은 신라장군 김유신으로 그가 생전에 미륵신앙 집단인 화랑이었기 때문에 그를 모신 사당을 승사라고 한 것이다.

태조 왕건이 왕순식의 고향 명주에 객사를 건립하고 명칭을 `임영관'이라 한 까닭은 예부터 명주 고을은 신선이라 부르던 화랑이 노닐던 곳이었기 때문에 신선이 산다는 `봉래', `영주'에서 영주의 `영(瀛)' 자를 따서 `임영(臨瀛)'이라 한 것이다. 450년 전 율곡은 벼슬을 버리고 외할머니 병 간호를 위해 내려왔다 임영관 앞 동헌에서 부사와 차를 마시며 “아득한 영주 땅 신선 얘기로 꽃을 피웠다”고 했다.

태조 왕건과 왕순식으로부터 싹튼 천년 단오는 이렇게 태어나 대물림됐고 아울러 객사까지 선물받으면서 율곡과 사임당이 즐겨 사용한 `임영'이라는 아름다운 강릉 별호까지 얻게 됐다.

이렇듯 천 년을 대물림해 온 강릉단오는 세계 유산으로 이름을 올리고 이제 새로운 천 년을 위해 새 역사를 써 가고 있는 것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듯 그루가 부실한 전통도 없다. 천 년을 이어 온 전통은 새로운 천 년을 향해 발돋움해야 하고 오백 년을 이어 온 전통은 새로운 오백 년을 준비해야 한다. 내남없이 관심 밖이라 게을리했다가는 역사의 죄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