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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에 일본군과 전투... 호남 의병 박광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글쓴이 : 날짜 : 2019-06-03 (월) 21:47 조회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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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의병 역사, 독립운동정신' 세미나에서 재조명

[오마이뉴스 이돈삼 기자]

 진보적인 민권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죽천 박광전이 공부를 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죽천정.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광곡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박광전의 의병활동은 아들, 손자, 증손자로 이어졌습니다. 보성 나아가 호남의병의 정신적 지주가 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왕자의 사부를 지내기도 했던 박광전은 또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애민과 위민정신으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선생의 나이 67살이던 임진왜란 때, 72살이던 정유재란 때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지금의 나이로 보면 100살 안팎으로 봐야 합니다. 의병을 모으는 격문에서도 왕에 대한 충성보다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면서 백성들을 구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민권사상가이고 운동가입니다."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의 얘기다. 정 위원은 의병의 날(6월 1일)을 앞두고 지난 5월 30일 전남 보성문화예술회관에서 (사)호남의병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보성군 의병역사, 독립운동정신 학술 세미나'에서 '전라좌도 의병의 사표, 보성 박광전 의병장'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호남의병연구소 주관으로 5월 30일 전남 보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보성군 의병역사, 독립운동정신 학술 세미나’ 전경. 6월 1일 의병의 날을 앞두고 열려 큰 관심을 모았다.
ⓒ 이돈삼

 
죽천 박광전(1526-1597)은 의병을 대표하는, 호남의병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연유로 죽천의 삶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광전은 홍섬과 양응정에게서 경전을 익혔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다. 죽천의 태자리가 전라남도 보성, 퇴계는 경북 안동에 살았다. 오늘날 자동차 길로 350㎞, 천리 길에 가까운 거리라는 걸 감안하면,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1568년 과거시험에 합격한 죽천은 전라감사 미암 류희춘의 천거로 관직에 나간다. 1581년 나이 56살에 왕자(광해군)의 스승이 된다. 2년 동안 왕자의 스승으로 있으면서 왕실의 잘못까지도 바로잡았다. 이후 함열(전북 익산)현감으로 있을 때엔 농사와 잠업을 권장하며,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줬다. 관아의 동헌에다 시민여상(視民如傷),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 백성을 대하겠다는 다짐글을 붙여두고 백성들을 내부모·형제처럼 대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는 엄정했다.

72세에 의병 일으킨 박광전
  
 ‘보성군 의병역사, 독립운동정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앞서 공연된 '임계영'의 한 장면. 전라좌도 의병장 임계영의 삶을 그린 연극이다.
ⓒ 이돈삼

 박광전의 삶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더욱 빛을 발휘한다. 일본이 쳐들어온 지 20일도 안 돼서 임금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갔다. 일본군은 한양에 입성하고 함경도까지 북진했다. 당시 나이 67살이던 죽천은 성치 않는 몸이었지만, 의병을 일으키자는 격문을 쓴다.
 
죽천의 격문을 보고 보성관아에 모여든 의병이 700여 명, 이른바 전라좌의병이다. 죽천은 제자인 안방준을 대장으로, 큰아들 박근효를 참모로, 처남 문위세를 군량미 관리 책임자로 삼았다. 병환 중의 몸으로 의병을 통솔할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임계영을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박광전이 앞장서 일으킨 보성의 전라좌의병은 넓은 평야를 지닌 호남을 지키며, 조선군의 군량미와 군수물자 조달을 도왔다. 나아가 영남지방까지 지원을 하며 나라를 지켜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박광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에도 72살의 몸으로 또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72살은, 지금의 100살 안팎으로 봐야 한다. "나이가 들어 몸이 병들었지만, 한줄기 목숨이 아직 붙어 있다"면서 의병장을 맡아 화순 동복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애민·위민의 정신으로 의병으로 참여한 박광전의 삶은 아들, 손자, 증손자에까지 이어진다. 장남 박근효가 아버지 박광전과 함께 임란 의병으로 활동했다. 박근효의 아들 박춘수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활동을 했다. 또 다른 손자 박춘호는 사촌형인 박창수와 함께 의병을 모아 충청도 인접의 여산까지 달려갔다. 박광전의 증손자이자 박춘수의 아들인 박진형도 병자호란 때 안방준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박광전이 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사실을 안 후손들이 호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것이다. 남다른 애민정신을 지닌 집안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아마도 없거나 극히 드물 것이다. 
 
 죽천 박광전의 위패가 배향돼 있는 용산서원.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죽천 박광전이 후학들과 학문을 탐구했던 산앙정.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

죽천 박광전을 기리는 유적이 전라남도 보성에 많다. 위패는 보성군 노동면 용산서원에 배향돼 있다. 노동면 광곡리에 있는 죽천정은 박광전이 공부를 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공간이다.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 입구에 있는 산앙정도 죽천이 후학들과 학문을 탐구했던 곳이다. 박광전의 시문집을 새긴 목판과 초서를 새긴 유묵판도 전해지고 있다. 의병을 모았던 보성천변의 거병지도 있다. 일본군과 싸워서 대승을 거둔 적벽도 멀지 않다.
 
그럼에도 죽천 박광전이 지역주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적벽투어를 가더라도 풍광만 보고 나올 뿐, 노구를 이끌고 일본군과 맞서 싸운 죽천의 적벽전투를 떠올리지 않는다. 보성강 상류, 광곡역 앞의 죽천정은 철길로 가로막혀 있다.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대원사로 가는 길에 자리한 산앙정도 매한가지다. 최근에 큰돈을 들인 용산서원도 투자대비 활용도가 매우 낮다.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찾아봐야 할 곳들이다.
 
죽천 박광전은 자신의 출세보다도, 백성을 사랑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엔 맨 앞자리에 서서 싸웠다. 사랑하는 내 가족과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나아가서 아들과 손자, 증손자로 이어진 의병활동도 각별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였다. 호남의병의 표상이다. 
 
 지난 5월 30일 ‘보성군 의병역사, 독립운동정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앞서 공연된 연극 '임계영'의 한 장면. 전라좌도 의병장 임계영의 삶을 그려 큰 호응을 얻었다.
ⓒ 이돈삼

   
 지난 5월 30일 보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보성군 의병역사, 독립운동정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노기욱 호남의병연구소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돈삼

 
한편 '보성군 의병역사, 독립운동정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는 '전라좌도 의병장 임계영'의 삶을 그린 연극 공연을 시작으로 ▲보성군의 의병사 콘텐츠와 호남의병 ▲전라좌도 의병의 사표 박광전 의병장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의 의병활동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주제발표를 통해 노기욱 호남의병연구소장은 "보성군민은 임진년 전라좌의진을 결성하고, 전라우의병과 합세해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면서 "전남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경상도 등 전국에서 활동했다"고 역설했다. 홍영기 순천대 교수는 "보성의 안규홍 의병장은 전국 유일의 머슴 출신 의병장, 가장 용감하고 신출귀몰한 의병장, 일본군에 의해 '거괴'로 분류된 의병장이었다"고 강조했다.
  
 머슴(담살이) 의병장으로 알려진 안규홍이 살았던 보성 법화마을의 옛집.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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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패트릭 섀너핸(왼쪽 두번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과 해리 해리스(왼쪽) 주한 미국대사가 3일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 접견을 기다리며 정의용(오른쪽 두번째)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06.03.

pak713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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