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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 오늘의운세]소띠 ㅅ·ㅇ·ㅎ 성씨, 방황 말고 가정 지키세요

글쓴이 : 날짜 : 2019-04-22 (월) 02:19 조회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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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원추의 '오늘의 운세' 2019년 4월22일 월요일 (음력 3월18일 기축, 정보통신의날)

▶쥐띠

허점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자책하기에 앞서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아라. 부부간에 책임 짓지 못할 말과 행동은 피할 것. 서로가 존중하는 예의가 필요하다. 3, 7, 11월생 인정 때문에 내 것 다 줄 수 있으니 문서 조심할 것.

▶소띠

급하다고 해서 포부만 가지고 대업을 이룰 수는 없다. 2, 8, 11월생 신중히 판단해서 계획을 세운 뒤 시작할 것. 하루아침에 신용과 도덕이 땅에 떨어질 수 있다. ㅅ, ㅇ, ㅎ성씨는 방황하지 말고 가정을 지켜라.

▶범띠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함을 알 것. ㅁ, ㅍ, ㅊ성씨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부부간 애정 또한 식을 수. 금전으로 인한 일들이 쉽게 풀릴 수 있는 운. 상대에게 힘이 되어 준다면 사업 또한 길하다.

▶토끼띠

가정문제가 신경을 건드리니 좀 더 화목을 다져라. 가정이 원만할 때 부가 따름을 알라. ㄱ, ㄴ, ㅂ성씨 의류나 건축업 투자는 길하나 정도에 맞는 계획부터 세울 것. 먼 길 떠난다면 밤길 운전 조심하라.

▶용띠

계획한 일에 집착하다보면 신경성 노이로제에 놓일 우려 있겠다. 몸과 마음 가다듬어 스스로 변신해 봄이 어떨지.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선후배나 친지와 상의하라. 쓸데없는 배짱은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으니 참고하라.

▶뱀띠

너무 큰 재물은 탐내지 마라. 형제간에 금전으로 구설 있겠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라. 후회스러운 결과 낳을 듯. ㅁ, ㅂ, ㅊ성씨 애정은 양보에서 오는 것. 사랑한다면 놓치지 말고 쟁취할 때 천정배필 만날 듯.

▶말띠

욕심으로 말미암은 명예손상은 약이 될 수 있다. 덕을 쌓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앞날의 발전을 이루는 칩경임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약속한 말에 책임을 질 때이다. ㄱ, ㅅ, ㅂ성씨를 가까이 하라.

▶양띠

타인을 무시하면 결국 자신도 존경 받을 수 없는 법. 자만심은 절대 금물이다. 겸손한 자세로 자기 일에만 초지일관하라. 현재 풀리지 않는 것만 생각 말고 미래를 보며 근면성실한 것이 최고다. 주위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것.

▶원숭이띠

주변이 어수선하더라도 침착하게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게 좋다. 비밀이 있으면 일찍 당사자에게 털어 놓고 의논해야 본인에게 이롭다. 마음이 편하면 하는 사업도 번창한다. 5, 7, 9월생은 가정사로 갈등 크겠으니 매사 조심.

▶닭띠

상대방을 설득하려다 설득 당하는 격이니 알고 대함이 좋을 듯. 자칫 시비가 우려되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3, 5, 10월생 사랑하는 자 울고 있다. 기혼자는 임신소식, 미혼자는 짝찾기 일보직전. 동, 북쪽이 길하다.

▶개띠

침착한 성격은 찬사를 받을만 하지만 낙천적인 면은 조심해야겠다. 잘되어 가던 일을 망칠 우려가 있으니 남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좋을 듯. 3, 5, 11월생 애정에 울고 자식 걱정으로 한숨뿐이구나. ㄱ, ㅂ, ㅊ성씨에게 도움을 청하라.

▶돼지띠

남의 자존심도 지켜줄줄 아는 스스로를 냉정히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척하는 성격으로 큰 손해를 초래하는 격. 언론계 종사자에게는 행운의 날. 고집으로 일을 추진하라. 범, 돼지띠가 신경 쓰인다. 2, 4, 6월생 검정색을 멀리함이 좋을 듯.

구삼원 원장 02-959-8493, 010-5584-9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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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직원 특혜로 남미 등 여행… 남편은 독립 후 자기 사업 시작, 회사 일 도우며 두 딸 출산1987년 뉴저지의 한 공원에서 열린 재뉴욕서강대모임에 참석했다 찍은 가족사진. 이때는 사업과 육아로 바빴음에도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에 신나고 즐거웠다.

결혼 후 뉴욕에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남편과 나는 성향이 많이 닮았다. 좋아하는 음식도, 영화도, 패션 취향도. 무엇보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는 것도 비슷했다. 그래서 답답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 도망치는 나를 그는 잘 이해해줬다. 나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격이 서로 부딪힐 때는 둘 중 하나를 부러뜨리는 치명적인 복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우리는 ‘뉴욕의 문화를 누리려면 맨해튼에 살아야 해’하며 두 사람 수입의 5분의 3을 신혼집 월세로 썼다. 월급 타는 날이면 한 달에 한 번 초밥집에서 귀한 초밥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한 달을 버텼다. 가난하지만 즐거운 일상이었다. 그제야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라며 안도했다.

뉴욕에 살면 뮤지컬은 필수라고 해서 처음으로 뮤지컬 ‘에비타’를 관람한 날, 나는 ‘이런 세계가 존재하다니’하며 잠을 설칠 만큼 흥분했다. 그 후 새로운 뮤지컬과 음악 공연을 보기 위해 돈을 모았고 뉴욕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새롭게 체험하는 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항공사 직원은 항공권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 며칠의 여유가 생기면 남미 카리브해 유럽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어른들은 우리를 보며 “돈 모아 집을 사야지…”하고 걱정했지만, 우리는 스튜디오 원룸에 살면서 세상 구경하는 것에 모든 의미를 두고 살았다. 누구든 삶에서 놓치고 싶지 않아 할, 꿈 같은 시간이었다.

1982년 9월 큰딸 수현이가 태어났다. 이리도 신기하고 예쁜 아이가 내 아이라니, 실감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한번은 딸아이를 보러 온 선배가 “아유, 예뻐라. 그런데 이 아이가 예쁘다고 네가 만지면 만질수록 아이는 네 그릇만 해져”라고 했다. 아이의 정신을 담을 그릇에 관한 이야기임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는 “아이는 네 소유물이 아니야. 네 작품도 아니고 하나님의 작품이야. 그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내어놓을 줄 알아야 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보라며 교회에 나오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싫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그럴 때 이런 멋진 말을 나의 뇌리에 남게 해준 그 선배에게 지금도 참 고맙다.

수현이가 태어나고 나를 돕기 위해 친정엄마가 미국으로 건너오셨다. 손녀를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시면서 엄마는 당신의 삶 중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손녀딸을 향한 사랑이 그분을 그리도 행복하게 한 것이다.

남편도 아이를 기르는 가장으로 모드를 바꾸고 회사에서 독립해 원단사업을 시작했다. 85년 둘째 수진이를 임신한 상태였던 나는 배가 불뚝한 상태로 수십 개의 원단 조각을 전단지에 잘라 붙였다. 그러면 남편은 그 전단을 들고 7번가 패션 애비뉴에 있는 수백 곳의 디자이너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시작했다.

임신 중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도 무엇을 새로 시작한다는 설렘에 힘든 줄 몰랐다. 서로를 이해하는 내 편이 함께 있다는 것에 든든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수진이가 태어나자 시어머니도 뉴욕으로 오셨다. 두 할머니의 사랑으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할머니들이 키워주시니 별 어려움 없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남편의 사업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정리=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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