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을 받은 딸이 준 용돈을 받고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달 중순 취직을 한 딸이 엊그제 추석연휴에 다니려 와서, 인생의 첫 월급을 받았다며, 추석 선물 겸 할머니께 봉투를 드리고, 아비인 내게 똑같은 노란 봉투 하나를 건네주는데, 봉투를 받는 짧은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은, 말과 글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운 마음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마음이겠거니, 이런 거였겠구나! 짐작하면서, 잘 쓰겠다며 받아서 지갑에 넣어 두었는데, 딸이 떠나고 없는 지금 지갑을 열어, 딸이 주고 간 노란 봉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뭉클함과 안쓰러움이 뒤엉킨 것으로, 참 묘한 기분이다.
구례읍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해서 매달 아버지의 용돈을 보낼 테니 팍팍하게 살지 말라는 딸에게, 고맙지만 아버지는 딸의 인생에 짐이 되고 싶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네가 바라던 직장을 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아버지는 됐으니, 이제부터는 정말 네가 살고 싶은 네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가라며, 손을 흔들어 딸을 보냈다.
사람 사는 일들이 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딸이 떠나고 없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두었던 일들을, 슬슬 시작해도 좋을 인연의 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태평양 넓은 바다의 여행을 끝내고, 섬진강 강물을 거슬러 온 은어들이, 돌아온 여울에서 죽어 어린 새끼들을 살리는 것처럼, 최소한 산천의 자연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내 영혼과 이승의 생을 마음껏 즐기면서, 동시에 딸의 앞길에 방해가 되거나, 짐이 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인데, 나는 가능한 그렇게 살고 싶은 내 꿈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얼마가 들어있을까?
얼마를 넣었을까?
접혀진 노란 봉투를 들고 있는, 손끝에 만져지는 느낌으로 보아, 5만 원 신권 두어 장 아니면 서너 장 들어있을 것 같은데, 궁금하기는 하지만 열어보고 싶지는 않다.
얼마가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열어보지 않고, 딸을 위한 아비의 부적(符籍)으로, 지갑에 넣어두고 다닐 생각이다.
아마도 내 신상에 어떤 급작스럽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딸이 첫 월급으로 준 용돈을 담은 노란 봉투를 열고 싶지 않는데, 내 인생에서 이 봉투를 여는 일이 없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것이니, 원컨대 나는 내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신령한 국사봉(國師峯)에 두 손을 모아 빈다.
통합과 화합의 강 섬진강에서
2018년 9월 25일 박혜범 씀
사진설명 : 첫 월급을 받은 딸이 준 용돈을 담은 노란 봉투와 그리고 창문 밖 신령한 국사봉(國師峯)과 황금빛 가을볕이 아름다운 강변의 풍경이다.